Juventus/History2009. 7. 28. 19:33

       Club's history


Before and after World War II


Juve win two Italian Cups. 1947, the Avvocato Giovanni Agnelli becomes Chairman.

 

득점 기계 Gabetto

  1935-36 시즌, 유베는 챔피언 Bologna에 승점 5점 뒤진 리그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미 유베는 골키퍼 Valinasso, 풀백 Foni,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깰 수 없는 Monti를 보유하고 있는 데에 더해, 이 시즌 20골을 넣은 수퍼 Gabetto가 등장했다.

  그 다음 시즌에도 5위를 했지만 Borel II가 18골, 어린 Gabetto가 17골을 넣었다. Amoretti와 Foni, Rava가 여전히 강력한 디펜스 트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비안코네리는 1937-38시즌, 다시 한번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Ambrosiana Inter에 뒤진 2위로 시즌을 끝냈다. 하지만 이 시즌, 유베는 결승전에서 Torino를 꺾고 첫 번째 이탈리안 컵을 차지했다.

 

Parola의 등장

  1938-39 시즌, 유벤투스는 여전히 Depetrini, Foni, Gabetto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바로 다음 시즌에는, Ambrosiana Inter와 Bologna에 밀려 3위를 차지했다. 한가지 긍정적인 점은 아주 어린 중앙 수비수가 시즌 후반기에 데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Carlo Parola였다. 1940-41 시즌, 팀은 다시 6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다음 해, AC Milan을 꺾고 두 번째 이탈리안 컵을 따냈다. 알바니아인 Lustha가 Gabetto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이탈리아가 세계 제 2차 대전에 뛰어들면서 리그에게는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리그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당시 유벤투스는 늙기는 했지만 여전히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Giuseppe Meazza를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Gabetto가 Torino로 팀을 옮겨버렸다. 이 시즌 유벤투스는 Torino와 Livorno(놀랍게도!!!)에 밀려 3위를 차지했다.

 

전시(戰時)의 리그

  전쟁이 가장 심해졌던 시기에도 축구는 계속되었다.

  1944년, 유벤투스는 지역 토너먼트에 다른 두 팀과 함께 참가했다. 그 중에 한 팀은 당시 유벤투스의 회장인 Piero Dusio가 소유하고 있던 자동차 공장 Cisitalia였다. 유벤투스는 Sentimenti IV, Rava, Depetrini, Parola, Sentimenti III, Borel II가 뛰었고, Foni, Varglien II, 알바니아인 Lustha, Santacroce가 Cisitalia에서 플레이했다. 경기 중에 스탠드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토너먼트가 중단되었다.

 

Gianni Agnelli 회장과 Boniperti의 등장

  1945년 10월 14일, 마침내 리그가 다시 시작되었고, 곧장 더비 경기가 벌어졌다. Torino는 이미 'Grande Torino'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유베도 이미 강했고 2-1로 승리했다. 그 이후는 두 팀 간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Torino는 Livorno를 꺾었지만 유베는 Napoli를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타이틀은 Granata가 차지했다. 이 해 여름, 팀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47년 7월 22일,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은 'Avvocato' Gianni Agnelli가 회장이 되었다. (Avvocato는 the lawyer라는 뜻입니다.) 구단의 새 프론트가 맺은 첫 번째 중요한 계약도 1947년에 있었다. 그 계약은 Barengo의 꼬마, Giampiero Boniperti였다.(이때 그의 나이는 열 아홉이었습니다.) 유베는 이미 다른 포지션에 Parola와 Sentimenti IV라는 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를 데리고 있었다. 그의 등장으로 드디어 팀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던 센터 포워드가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어린 선수, 덩치는 작지만 기술이 뛰어났던 Muccinelli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됐다. 1948년 여름, 유베는 덴마크 출신의 체격 조건이 좋은 포워드를 한 명 사왔다. 그의 이름은 John Hansen. 그는 아주 파워풀했고 헤딩 경합이 아주 좋았다.

 

HEADQUATERS

1933-43 Via Bogino 12

1943-47 Corso IV Novembre 151

 

GROUND

1933-90 Corso Sebastopoli Stadium


       Chairmen


 

1935-36 Enrico Craveri-Giovanni Mazzonis

  Enrico Craveri, 비안코네리 프론트였던 그는 Edoardo Agnelli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회장이 되었다. 그는 1908년부터 1912년까지 유벤투스의 선수였으며 나중에 Edoardo Agnelli의 오른팔이 되었던 Giovanni Mazzonis의 절친한 친구였다.

 

1936-41 Emilio de la Forest de Divonne

  토리노의 귀족이면서 파시스트 정권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Edoardo Agnelli의 뒤를 이을 사람은 그만큼 명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클럽의 생각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1941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했지만 실질적인 클럽 운영은 경험이 있었던 Craveri, Mazzonis, Remmert가 맡아서 했다.

 

1941-47 Piero Dusio

  그는 젊은 시절,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유벤투스에서 오른쪽 윙어를 했던 제법 괜찮은 축구선수였다. 은퇴한 뒤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고 Cisitalia의 오너로서 전쟁이 벌어지던 기간 동안 유벤투스가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1947년, 그는 Giovanni Agnelli가 회장이 되도록 설득했다.

 

1947-54 Giovanni Agnelli

  스물 여섯에 불과했던 1947년 7월 22일, 그는 아버지, Edoardo와 똑같이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회장에 선출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Giovanni가 회장이었던 기간도 클럽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John Hansen, Martino, Praest를 영입한 것 같은 좋은 계약들을 성사시켰다. 그 뿐 아니라 Viola, Bertuccelli, Piccinini와 같은 이탈리아의 어린 재능들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는 유베가 1950년과 52년에 타이틀을 차지했던 Great Juve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Avvocato'는 1954년 9월 18일, FIAT에서의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 회장에서 물러났다.



       Captains


 

Virginio Rosetta

Luis Monti

Mario Varglien II

Pietro Rava



       Coaches

 


Virginio Rosetta

  축구 선수로서도 전설이었던 그는 선수 겸 감독으로 커리어를 마쳤고 그 이후로는 3년 간(1936년부터 39년까지) 팀을 감독했다. 그는 축구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지식들을 잘 이용했다.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는 클럽의 스카우터로 남았고 Parola와 Boniperti같은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Umberto Caligaris

  1938년 Brescia에서 풀백으로서의 경력을 마감한 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팀 동료였던 Rosetta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유베에 돌아왔다. 그는 좋은 감독이었지만 1940년, 예전에 함께 뛰었던 선수들과의 기념 경기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그때 마흔도 채 되지 않았다.

 

Federico Munerati

  그는 열심히 뛰었고, 기술도 있었고, 득점도 많았다. 그래서 1922년부터 33년까지, 11시즌 동안이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다. 그 이후에는 유스 팀 감독이 되었고 1940년에 퍼스트 팀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42년 이탈리안 컵을 따냈다.

 

Giovanni Ferrari

  이탈리아 국가대표로서 두 번의 월드컵 우승과 여덟 번의 리그 타이틀. (그 중 다섯 번은 유벤투스와 함께했다.) 포워드로서 그의 경력은 대단하다. 유벤투스에서 그는 자신의 화려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1960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유베의 감독으로 있었던 동안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한 시즌(1941-42) 만에 물러났다.

 

Felice Borel

  30년대, 유베에서 센터 포워드로 뛰면서 많은 득점을 했던 그는 1942년부터 46년까지의 암울했던 시기, 선수 겸 감독으로 있었다.

 

Renato Cesarini

  1930년부터 35년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5년 간, 그는 유베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그리고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 감독이 되었다. 유베는 그를 잊지 않았고 그를 1946년부터 48년까지, 그리고 1959년, 이렇게 두 번이나 채용했다.

 

William Chalmers

  거드름을 피우기를 좋아했던 영국인인 그는 Cesarini의 자리를 1948년에 이어받았다. 그는 선수들이 호텔에 있든, 기차에 있든, 어디에 있는지는 관계없이 그들을 훈련시키는 변덕을 부렸다. 구단 프런트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이런 미친 짓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도 그를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 시즌 뒤에 해고됐다.


사진과 텍스트의 출처는 Juventus.com 입니다.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Posted by P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