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ventus/History2009. 9. 16. 01:03

       Club's History


1969-70, Boniperti Managing Director, 72, 73 titles with Vycpalek, 75 title with Parola


Carniglia, Rabitti와 Picchi

  1969년, Heriberto Herrera의 시기는 끝나고 Luis Carniglia가 새롭게 유벤투스의 사령탑에 올랐다. 풀백 Marchetti, 센터백 Morini, 하프백 Furino, 포워드 Roberto Vieri와 스트라이커 Lamberto Leonardi가 영입되었다. 팀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몇몇 전술적,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었고, 이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했다. 클럽 운영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Ercole Rabitti가 Carniglia의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Boniperti가 Managing Director로, Italo Allodi가 General Manager로 취임했다. 팀은 스스로를 다잡고 실력을 다시 발휘하며, 8연승으로 Cagliari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Gigi Riva가 지휘하던 Cagliari는 1위를 계속 유지했고 스쿠데토를 따내는 데에는 토리노에서 유벤투스와 비기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스쿠데토를 따냈다. 팀은 1970년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나이가 좀 있었던 선수들 중에서는 Haller와 Salvadore만이 팀에 남았고 클럽은 Spinosi, Capello와 Landini와 같은 젊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리고 Franco Causio, Roberto Bettega가 Palermo와 Varese에서 임대복귀했다. Armando Picchi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그의 지휘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즌 전반기와 후반기의 유베는 완전히 달랐다. 시즌 전반기에는 기복이 심했지만, 후반기에는 다시 궤도에 올랐다. 특히 유럽무대에서 그랬다. Vycpalek 감독과 함께, 팀은 서서히 리그 테이블을 올라갔고 Fairs 컵에서는 결승전에서 Leeds United를 만나 준우승을 차지했다.

 

Vycpalek의 타이틀

  1971-72 시즌 4라운드. Bettega와 Causio의 활약에 힘입어 San Siro에서 AC Milan을 4-1로 꺾었던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팀에서 가장 치명적인 스코어러 Bettega가 통증을 느꼈고 1월에는 스쿼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리그 1위를 수성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 봄에는 AC Milan과 Cagliari가 1위를 위협하는 가운데, 더비 경기에서 Giagnoni의 Torino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유베는 Causio의 해트트릭으로 Inter Milan을 꺾고, Cagliari도 꺾으면서 곧바로 1위를 다시 되찾았다. 14번째 스쿠데토를 따냈다.

  다음 시즌, 이미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Dino Zoff와 Josè Altafini가 Napoli에서 영입되었다. 1972-73 시즌, 출발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팀의 고참이었던 Altafini의 노력으로 유베는 다시 테이블을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4월, AC Milan에는 5점, Lazio에는 3점 뒤져있었다. 유러피언 컵에서는 Olympique Marseille, Magdebrug, Ujpest를 만났고, 리그도 병행했기 때문에 유베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유베는 그 이후로 시즌 마지막 날까지 모든 리그 경기를 승리했다. 결정의 날. 유베와 Lazio에 승점 1점을 앞서 있었던 AC Milan은 Verona에서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그리고 Lazio도 Napoli에 패했다. 반면에 유베는 Cuccureddu의 골로 Roma에 역전승을 거두었다. 극적으로 15번째 스쿠데토를 따낸 것이다. 리그 우승을 축하한 뒤,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Cruiff의 Ajax를 맞아 패했다.

 

Parola의 귀환

  1973-74 시즌, Altafini는 여전히 강한 신뢰를 받고 있었고 수비수 Claudio Gentile이 Varese에서 영입되었다. 하지만 시즌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유러피언 컵에서도 좋지 못했다. 유베는 Dynamo Dresden에게 패하고 말았다. Lazio의 플레이는 절정이었고 유베는 가끔 그들이 어떤 팀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즌 말미에는 괜찮은 결과를 냈지만 2위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또 한번 선두에 올랐다. Carletto Parola가 팀을 떠난지 15년 만에, 유베에 돌아왔다. Damiani와 Scirea가 새로이 영입되었다. 아주 멋진 시즌이었다. 유베는 Napoli에서 6-2로 승리를 거두었고, Altafini의 노력에 힘입어 봄에는 토리노에서도 그들을 꺾었다. 5월 18일, 스쿠데토 획득을 자축하듯 Vicenza를 5-0으로 꺾었다. 1975-76 시즌, 시작은 지난 시즌과 같았다. 유베가 1위를 달렸고 나머지 팀들이 뒤쫓아 왔다. 그 중에서 Radice가 이끄는 Torino가 특별히 강한 상대였다. 어린 Tardelli와 예비로 센터 포워드 Bobo Gori가 영입되었다. 시즌 후반기가 절반 정도 지난 상황에서, 유베는 Granata(Torino의 별명)에 승점 5점 앞서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못되기 시작했고 유베는 Pulici와 Graziani의 Torino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HEADQUARTERS

1964-85 Galleria San Federico 54

 

GROUND

1933-90 Corso Sebastopoli Stadium

 

 

       Chairmen



1962-71 Vittore Catella

 

1971-90 Giampiero Boniperti

  1969년 Managing Director에 취임했다. 유벤투스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Vittore Catella의 뒤를 이어 1971년 7월 13일 회장이 되었다. 그의 재직 기간 동안 유베는 이탈리아 내에서, 세계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90년 2월 5일 사임했다. 그와 함께 유베는 72, 73, 75, 77, 78, 81, 82, 84, 86년 스쿠데토를 따냈고 유럽무대에서도 다수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축구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선수들과도 믿음을 담보로 한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그는 선수들에게 백지 계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시기였다.

 

 

Captains



1965-70 Ernesto Castano

1970-74 Sandro Salvadore

1974-84 Giuseppe Furino

 

 

       Coaches



1969-70 Luis Carniglia

  1969년 여름, Luis Carniglia는 Heriberto Herrera의 자리를 대신해 팀에 합류했다. 풀백 Marchetti, 센터백 Morini, 하프백 Furino, 포워드 Roberto Vieri와 스트라이커 Lamberto Leonardi를 영입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Carniglia는 스타플레이어들을 과도하게 아껴서 그들을 훈련에서 제외하기 일쑤였다. 반면에 자신이 보기에 기술적으로 보통 수준이라고 판단되는 Furino와 Morini 같은 선수들에게는 차갑게 대했다. 기자들은 그를 좋아했지만 그가 일하는 방식은 좀 구식이었다. Palermo에게 4-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팀은 곧 밥 먹듯이 승점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뒤 경질되었다.

 

1969년 10월 24일부터 Ercole Rabitti

  현명했던 Ercole Rabitti는 Carniglia에 뒤이어서 감독이 되어, Managing Director, Boniperti, General Manager, Italo Allodi와 함께 클럽을 이끌었다. 1969년 10월 24일, 예상했던대로 유베는 다시금 리그 테이블을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유베는, 그 당시 리그를 지배했던 Cagliari를 따라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즌에 우승을 향해 달려가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 여름, 팀에는 대변화가 있었다. 스쿼드는 눈에 띄게 젊은 선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빌딩 대상에서는 Rabitti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1970-71 Armando Picchi

  1970년 여름. 검증된 젊은 선수 여러 명이 클럽에 영입되었다. 이 열정적인 선수들을 다루기 위해서 유베는,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뛰어난 선수로 활약했던 Armando Picchi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불행히도 건강에 문제가 생겨, 자신이 따낸 것이나 다름 없었던 첫 번째 스쿠데토도 들어보지 못했다.









1971년 2월 28일부터 Cestmir Vycpalek

  Boniperti는, 불운했던 Picchi의 뒤를 이어서 자신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Cesto라는 별명을 가졌던 Cestmir Vycpalek과 계약을 맺었다.


  Vycpalek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살집이 좀 있는 동네 아저씨 같았던 그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팀의 어린 선수들

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Vycpalek은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너그러워지기도 했다. 까불기를 좋아했던 Haller 같은 선수가 가끔 그를 화나게도 했지만, 결국 그도 또한 성격을 고치고 동료들과 함께 훈련에 열심히 참가하게 되었다. 1971-72 시즌은 Vycpalek의 것이었다. 어린 Bettega가 득점을 올렸고, 팀의 고참 Salvadore 뒤에서 그를 받쳤다. Cesto는 클럽이 원했던 대로, 팀을 멋지게 조련해냈다. 그의 지휘 아래에서, 팀은 필요하면 화려한 경기를, 또 때로는 결과를 위해 효과적인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다음 시즌, 팀은 여전히 같은 폼을 유지했다. Zoff가 골대를 지키고 있었고, Altafini가 중요한 골들을 넣었다. 팀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감독이었지만 여전히 축구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었던 Vycpalek는 Lazio에게 밀려 아깝게 스쿠데토를 놓친 이후, 팀을 떠났다.

 

1971-74 Cestmir Vycpalek

 

1974-76 Carlo Parola

  실망스러웠던 1973-74 시즌 이후, 클럽에는 변화가 필요했지만 여전히 같은 이상을 갖고 있을 필요도 있었다. 이 일에는 Carlo Parola만큼 적임자가 없었다. 그는 선수로서는 하프백으로 활약하며 전설적인 오버헤드 킥으로 유명했고, 감독으로서는 1961년, Cesarini와 함께 유벤투스에서 스쿠데토를 들었다. 1974년의 유베는 리그에서 단연 최고의 팀이었다.

  Parola는 정말 많은 추억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추억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유베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필요할 때에는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활약했던 Altafini를 투입해 승리하기도 했다. 1975-76 시즌도 여전히 유베가 리그를 지배했다. 하지만 유러피언 컵에서 Borussia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고, Torino는 리그에서 강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스쿠데토는 확실한 것으로 보였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Granata가 역전하면서, 해피엔딩을 준비했던 Parola는 실망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진과 텍스트의 출처는 Juventus.com 입니다.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Posted by Pavel